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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의 그리움과 사랑

마음에 뜰 외

마음의 뜰에

               - 임은숙


너의 시간 속으로
떠나고 싶어
마음에 작은 집을 짓고
뜰에는 기도의 나무를 심었다

가지 끝에 매달린 연둣빛 보고픔이
여름날 소나기에 푸른 미소 짓더니

종내는
누런 열물을 토하며 야위어갔다

허공중에 찬바람으로 배회하는
미지의 방황

멀고멀어서
높고 높아서
닿지 못하는 네가 사무치게 미운 날
눈이 내렸다

쌓여가는 만큼
사랑도 둥글어간다며
하얗게 하얗게
그리움이 내렸다

 

 

첫눈

          - 임은숙


밤새
눈이 내렸다
깨알같이 박아 쓴
그리움의 연서

버선발로 뛰쳐나가 읽으려는데
얄미운 바람이 스윽 지워놓네

하얗게
눈이 날린다
사면팔방 날 부르는 소리
맑고 투명한
그리움의 길이 열린다

 

 

겨울 그리움

              - 임은숙


밤하늘에만 별이 뜨는 건 아니지
겨울의 하얀 들에도 무수한 별이 뜬다
숲으로 사라지는 찬바람을 부르며
별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 때
반짝 반짝이는 그리움 너머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하얗게 쌓인 별들 중에서 너의 별을 찾는 겨울엔
찬바람소리마저 그리움인양 사치스럽다

 

 

겨울에 피는 꽃

                 - 임은숙


봄여름에 피는 꽃 수두룩한데
겨울에 피는 눈꽃이 나는 좋더라

하얀 눈꽃이
無香으로
멀어져간 추억 불러오더라

하얀 눈길로
다가오는 익숙한 그림자
임인 듯
한품에 안겨오는 눈송이
봄꽃보다 다정하더라

 

 

겨울밤

 

           - 임은숙


짙은
적막의 밤

몽롱한 시선은
마땅히 둘 곳이 없고
맑은 귀는
사방으로 열려있다

바람의 작은 기척에
혹시나 하며 문을 여는데

어느 사이
바람은 멈추고 눈은 퍼붓고
그대는 보이지 않네

맨발에 신발 꿰신고
사립문 밖을 서성이는데
하염없이 눈만 쌓이고
어디에도 그대는 보이지 않네

 

 

눈 오는 밤에

                 - 임은숙


오렌지 빛 가로등 밑으로
반짝 반짝이며 내려오는
송이송이 눈꽃이
동화 속 같이 아름다운 시간

꿈속처럼 전해오는 그대 목소리에
짙게 묻어나는 그리움이
내 속에 사랑을 쌓고 있습니다
행복을 쌓고 있습니다

손바닥 위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
눈꽃처럼
우리 사이의 모든 장애는
타오르는 사랑으로 녹아버릴 것이라고
그대는 말합니다

조용히, 조용히
사랑이 쌓이고 있습니다
행복이 쌓이고 있습니다
저만치 희망이 보입니다

 

 

겨울밤을 걷습니다

                         - 임은숙


꽃 피는 계절도 아닌데
향기 가득한 밤입니다

네온사인불빛이 오히려 분위기를 흐리는
온통 하얀 세상이
나의 것이었다가 우리의 것이었다가
다시 모두의 것이 됩니다

하나 둘씩 빈가지에 피어나는
하얀 꽃이며
소리 없이 귓가에 머무는
하얀 음표들

그대의 눈빛 같은
그대의 손길 같은
그리움이 하얗게 날립니다

고대하던 봄이
오지 않아도 될 성싶은 이 밤엔
맑은 시를 써야겠습니다
밝은 시를 써야겠습니다
푸른 시를 써야겠습니다
마음의 봄을 노래해야겠습니다

 

 

겨울은 밤이 길다

                      - 임은숙


약속 없이 찾아주는
친구가 반가운 계절이다

독한 소주도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맥주도
다 괜찮다
멀어져간 기억을 안주 삼아
마냥 다정한 시간

어둠 내린 거리에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질 즈음
둥글어가는 이야기 구수하더라

흘러간 시간을 탓하지 않고
모아둔 이야기보따리 푸는 기쁨에
눈가의 잔주름 깊어지더라

세월이 무정타 하였느냐
이제 비로소 보이는 인생인 것을

문 두드리는 소리가
기다려지는
12월의 밤이다

 

 

겨울은 나의 몫이다

                           - 임은숙


녹지 않는 눈이
내 마음에 내려
지난 사연을 모두 덮어버릴 수 있다면
나의 세상은 설렘으로 가득하리

너를 다시 만나
새로운 어제를 만들고
낯선 희열로
다가오는 것들을 그러안으리

그러나
지금은 어둠의 길
슬픈 눈망울의 네 모습과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의 순간들이
짙은 안개 속에 나를 가두고

사랑의 깊이에 비례되는 아픔이
미움으로 대체되는 차가운 길목에서
절대적인 망각은
또 다른 아쉬움임을
헤어 나오지 못할 기억은 숙명임을 문득 깨닫는다

 

 

겨울나무

           - 임은숙


너처럼
추위에 떨지 않겠다고
다짐 같은 약속을 내게 했던 날

미처 알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 하나

너에게도
꿈이 있음을
긴 그림자로 커가는
초록빛 소망이 숨 쉬고 있음을

앙상한 너의 몸부림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분명 큰소리로 외쳤던 나는

저 멀리 뻗어나간
네 그림자가 잡고 있는
소박한 희망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 겨울 

             - 임은숙
 

유난히 추웠다 

밤이 오고
네 얼굴 
별이 되어
창가에 닿으면

내가 읽던 책속의 문자들이
찬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차가운 달빛이 
冷笑로
방안을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새벽이 오고
네 모습 성에 되어
창에 매달리면

도망갔던 문자들이
창에 녹아 내렸다 





...

 

 

멈춘 것이 아니야

                      - 임은숙


네가 떠난 뒤로
모든 것이
멈추어버린 것만 같았지

그리움도
기다림도
그때 그 자리에
굳어버린 것만 같았지

홀연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은 음성 하나

멈춘 것이 아니야
이렇게 쌓여가잖니
사랑이...

펑펑 퍼붓는
저기 저 흰 눈이 하는 말

 

 

사랑을 꿈꿉니다

                     - 임은숙


그대가 못 견디게 그리운 날
어둠속에 촛불 밝히고
눈 내리는 포근한 밤을 떠올립니다

크리스마스카드 배경처럼 하얀 창밖을 바라보며
따스한 촛불너머로
그대와 나 사랑얘기 나누는 그날을 떠올립니다

늘 새롭게
세상 그 누구에게도 비교될 수 없는
우리만의 사랑노래로
밀려오는 서운함과 아픔을 몰아내고
멋진 사랑을 꿈꿉니다

늘 가까이 두고 싶은 욕심이
그대를 향한 그리움만큼이나 큰 미움으로 다가올 때
밤바람에 실려 오는 아름다운 기억들이
사랑은 멀리 있어도
따스한 마음 하나로도 충분함을 깨우쳐줍니다

힘껏 팔을 뻗어도 내 손이 닿지 않는 그대와
하얀 설경 속을 거닐고 싶습니다

 

 

눈사람의 마음은 아무도 몰라 

                                               - 임은숙  


겉과 속이 한결같아 
작은 비밀 하나 간직할 줄 모르지 

기쁨도 슬픔도 
속으로만 인내하고 
그리움도 미움도 
드러낸 적 없었는데 

동강난 그리움이 
슬픈 음악 되어
가슴을 찌르는 순간 
겨우내 간직했던 사랑이 
하얗게 
녹 
는 
다 

순백의 떨림으로 사라진 눈사람의 
진실 
그 누가 알까? 

 

 

성에꽃

      - 임은숙


밤새 창가를 기웃거리던
당신의 그리움입니까

긴 밤 찬바람에 식힌
당신의 마음입니까

묘한 선과 알록달록 고운 무늬로
당신과 나를 축복해주던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만발한
숲속의 오솔길을 용케도 그렸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이 살아 숨 쉬는
우리의 낙원이 고스란히 창에 찍혔습니다

 

 

겨울언저리

         - 임은숙


가을 가고
겨울 오네

찬바람 스친 자리에 하얗게
눈이 덮이네

단풍 같은 그대 이름
어디론가 사라지고
빈 가슴엔 찬바람을 담네

그대 눈빛이 가을 같았으리
그대 뒷모습이 가을 같았으리

깊고 아픈
가을 그대여

겨울 오고
가을 가네

 

 

 

 

겨울이다

         - 임은숙


너 없는 세상이
아직은 두려워
익숙한 기억의 길을 그날처럼 거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선 음성

겨울이다!
추우면 춥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맘껏 외쳐도 좋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사계의 섭리
너의 나약함 비웃을 이
아무도 없다

눈물로 뜨겁게 그린 봄이
더욱 푸른 법

추우면 춥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꺼이꺼이 울어도 좋다

 

 

가출신고

         - 임은숙


돌아오는 길을
잊은 걸가요?

바람이 잠든 사이
하얗게 눈은 쌓여만 가는데

오색의 계절 빛을 따라나선
내 마음은
지금 어디에?

떠난 지도 이슥한데
돌아올 때도 되었는데

텅 비어버린 내안에
쌓이는
하얀 흐느낌들

어느 숲길 외딴 곳에서
아직도 방황을 멈추지 못한 내 마음을
그대 혹시 보셨나요?

 

 

12월

          - 임은숙


무수히 쌓여있는
낙엽들을
밀어내며 묻어버리며
긴 팔을 뻗어
뭔가 숨기려하는

12월은
그렇게 온다

털어내는
바람사이로
언뜻 스치는 기억 한 조각에
애써 태연한 척

바람 끝자락에 달라붙는
차가운 적막

아쉬운 듯 슬픈 듯
하얀 한숨을 흘리며

12월은
그렇게 온다

 

 

12월에는

       - 임은숙


어차피
잡을 수도 없는 걸

12월에는
이별 아닌
만남을 얘기하자

차라리
남아있는 것들에 나를 얹어
아쉬움 아닌
희망을 얘기하자

행여
아직도 무거운 미련 남아있다면
우리 다음을 기약하자

가서 오지 않는 세월이라지만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은 없으니까

순백의 12월에는
끝이 아닌
시작을 얘기하자

 

 

12월의 하늘아래

                    - 임은숙


티 없이 투명한 겨울해살이
깨알같이 부서져 내리며
조각조각의 그리움을 안겨줍니다

난생처음 수채화물감처럼 내 마음을 물들인 사랑이
그대로 그려진 걸까요?
무작정 빠져버리고 싶은 12월의 하늘이
당신의 품 같습니다

오늘같이 그리움이 넘치는 날
당신이 사무치게 보고 싶은 날
토해낼 수 없는 목마름으로 내 눈가에 이슬이 반짝이는 날
우연처럼 만날 수 있다면
봄바람이 잔디를 스치듯
찰나처럼 부딪칠 수만 있다면...

당신과 함께하는 날
반짝이는 햇살 사이사이로
하얀 눈발이 끝없이 날렸으면 좋겠습니다

 

 

12월 31일

         - 임은숙


아침의 꿈들이
사정없이 부서지는 저물녘
이루지 못한 것들에
미련을 매달고
바람처럼 거리를 헤맨다

오가는 사람들 중에
익숙한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외딴 곳 바람벽에
흔들리는 냉소
발목을 잡는다

누가
나를 향해 손을 젓는가
간다는 손짓인가
오라는 손짓인가

누가
나를 부르는가
찬바람 속에서
쉬지 않고 누가 나를 부르는가

 

 

송년

      - 임은숙


괜히 서글퍼지고
연거퍼 한숨이 나오고
잇닿은 허무에
안주 없는 술잔을 기울이고
꺼이꺼이 울지 못해 가느다랗게 흐느끼고
작고 초라해진 자신에게
원치도 않는 나이 하나 선물하며
세월무상의 합병증을 앓는다

 

 

1월

       - 임은숙


시작이라고
그 누가 외쳤는가

약속한 듯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

마음부터 앞서는 사람
걸음부터 옮기는 사람
무작정 뛰는 사람
갈팡질팡 허둥대는 사람
벌써 저만치 앞서간 사람

거대한 백지 위에
수천수만의 붓끝이 일제히 달린다

하얀 여백을 채우는
무질서한 설렘의 행렬
1월이다, 출발이다

 

 

2월

        - 임은숙


은은히 들려오는 듯한
개나리 벚꽃소식에
헤벌쭉 미소를 지으면
어느 사이 입안에 감도는
싱그러운 향기

2월은
초록을 잉태하고 있다

사뭇 누그러진 추위
그 사이사이로
바람의 잔물결이 전해주는
찰랑이는 환희

한순간에 다 드러내지 못하는
수많은 비밀
촉촉한 빛으로 그리며

아직은 차가운 계절에
발목이 잡혀
더더욱 소심스러운
2월은
수줍은 소녀이다



任恩淑: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집
'하늘아, 별아'(2016), '사랑디스크'(2017), '바람이 분다 네가 그립다'(202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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