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 깎는 날 / 안수동
물레성형된 찻잔을 내리고
굽을 깎는다
찻잔으로 나기 위한 첫걸음이
뒤집어 바닥부터 고루는 것은
하늘을 높이 오르고 싶어
땅 밑을 파는 기도의 시간
굽을 깎는 것은
맺힌 푸념을 풀어 내는 일
흙으로 있고 싶은 미련 자르고
돌이 되고 싶은 욕심 파내고
불길 두려움마저 깎아 낸다.
지금은 내가
청아한 청자가 되고 싶고
고결한 백자가 되고 싶으나
강물 따라 흘러 오는 세월
굽 깎듯이 다 깎아 내면
온갖 청탁 다 삭여 낸
거친 흔적이 애처러운
한점 분청찻잔이 되고 싶을테지
험한 길 헤맨 탓에 휘청
굽은 허리마저 반듯하게 깎은 후
천,만도 불꽃에 나를 구워내면
지난 날 부끄러웠든 기억들까지
화상 얼룩 그대로 남은
내 얼굴이 더 더욱
사랑스러워질 테지